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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창고, 골목길로 도시를 재생하다]
조회수:141
2016-05-12 20:49:36

이 글은 이경진 공동체육성팀장이 도시재생과 마을만들기를 위해 탐방한 대구지역의 이야기를 전문가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기술한 것으로 ‘문화저널’에 기고하여 게재되었습니다.

 

<기억의 창고, 골목길로 도시를 재생하다>

 

이경진

 

모든 도시는, 그것이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이든 사회적인 학습에서 만들어진 것이든, 특정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어느 도시의 이름을 들었을 때 처음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이 바로 그 이미지다. 대구가 임진왜란 이후 경상감영이 설치되었고 조선시대 3대시장인 서문시장과 가장 오래된 약령시장이 서왔던, 유서 깊은 상업도시라는 것은 그냥 활자 속 정보일 뿐이다. 나에게 대구는, 수구정당에게 항상 몰표를 던지는 보수지역이며 돈 많은 프로야구단 삼성라이온스의 홈구장이 있는 곳이다.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진보정당의 지지자이자 지금은 이름이 사라진 해태타이거스 원조 팬인 나에게는 여러모로 정이 가지 않는 지역인 셈이다. 그런 대구가 구도심의 일제강점기 적산가옥을 문화적으로 리노베이션하는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하고 있단다. 금시초문이었다. 애정이 없으면 알지도 못하는 법. 때문에, 내가 대구 도시문화기행에 좇아간 이유에는 약간의 호기심과 함께 대구에 대한 선입견을 조금은 지워버려야겠다는 반성도 있었다.

 

기행은 대구시 중구에 있는 ‘북성로’와 ‘봉산문화거리’ 그리고 ‘김광석 길’을 답사하는 것으로 짜여 있었다. 먼저 북성로( 北城路 ), 일제강점기 때는 모토마치( 元町 )로 불리던 거리로 탐방을 나섰다. 한자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일제강점기 때 대구읍성의 북쪽 벽을 허물고 만든 도로이며 상업중심지로 개발된 곳이다. 일본식 근대도시는 경찰서, 은행, 소방서 등 관공서가 밀집되어 있는 ‘혼마치( 本町 )’와 상점이 모여 있는 ‘모토마치( 元町 )’를 중심으로 도심이 형성되어 있다. 이 북성로를 중심으로 일본인의 상점들이 줄지어 섰고, 그중 약 400여 채가 적산가옥으로 남았다. 광복 이후에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군수물자와 공구, 철물 등을 거래하는 곳으로 그 번영을 이어가게 된다. 또한 유명한 다방이 많이 있었던 곳이다. 그곳에서 한국전쟁으로 피난 온 예술가들이 모여 교류를 하고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일본인상가에서 공구거리, 예술인다방까지 근대 백 년의 역사가 퇴적된 길이지만,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면 여느 도시의 구도심과 다를 바 없는 쇠락한 곳일 뿐이다. 하지만 ‘대구 골목의 재발견’이라는 백제기행의 부제목처럼, 골목길을 따라 조금만 천천히 걷다보면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우리의 근대를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동네사람들의 옷을 기워주었을 ‘꽃수선 성광라사’,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좀 논다하는 중년들이 아지트로 삼았을 ‘대안카바레’, 천주교성당, 개신교회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당당하게 서 있는 일본신흥종교 ‘천리교회’ 등등.

 

이어 방문한 봉산문화거리는 20여 개의 화랑과 골동품상점, 화방, 표구사 등이 집적되어 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이인성을 비롯하여, 수많은 미술인이 활동했던 대구의 지역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그러나 고백컨대 나는 소설가 이인성은 알아도 화가 이인성은 잘 몰랐다. 이인성을 모른다고 나에게 약간의 조롱을 받았던 모씨에게 지면을 빌어 진심으로 사과한다. 나의 얇은 식견 때문인지는 몰라도 봉산문화거리는 별 감흥도 없이 지나쳤다. 오래 머문 곳은 ‘김광석 길’이다. “아 참, 하늘이 곱다 싶어 나선 길. 사람들은 그저 무감히 스쳐가고 또 다가오고. 혼자 걷는 이 길이 반갑게 느껴질 무렵. 졸리운 오후, 아른한 오후. 물끄러미 서서 바라본 하늘.” 거리를 걷는 동안 스피커에서 나오던 노래와는 상관없이 내 머릿속에서 반복되던 김광석의 노래다. 물끄러미 서서 하늘을 바라보기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뜨거웠던 그 시절, 그 청춘으로 돌아간 것 같아 좋았다. 죄지은 사람처럼 몰래 담배를 피던, 방천시장으로 이어지는 골목길들도 아름다웠다. 죽은 김광석이 산 대구사람들을 먹여 살리는구나, 착했던 김광석은 죽어서도 좋은 일을 하는구나, 그때 김광석은 정말 왜 자살했을까, 이런 생각들이 노래처럼 스쳐가고 멀리멀리 날아갔다. 호불호는 있겠지만 조형물과 벽화를 이용해 관광학적 ‘장소성(spot)’를 잘 확보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의 관광전략은 결국 장소마케팅(place marketing)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장소가 ‘개인의 경험과 기억을 통해 의미화 된 공간’이라고 볼 때, 30대 후반부터 50대 초반까지 감수성을 공유할 수 있는 김광석의 노래는 천혜의 자원이다. 그 자원을 대구에서 성공적으로 선점했다. 다만 역사적 맥락도, 맛도 없는 길거리음식은 영 아니었다.

 

본격적인 답사에 앞서, 권상구(시간과공간연구소) 대표가 북성로 일대에서 진행되는 도시재생사업에 대해 설명했다. 강연에서 내가 인상 깊게 들었던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역사적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마을주민의 구술을 통해 전승해오는 이야기를 엮겠다고 한다. 둘째는 원형을 알 수 없으면 건물을 건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고학계에서 유물을 발굴할 때 지키는 첫 번째 원칙이다. 셋째로 부동산의 가치를 ‘천천히’ 올려주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역발상이다. 구도심에 활력을 불어넣은 사람들이 치솟은 부동산 가격 때문에 쫓겨나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그래서 보통 도시재생기획자들은 부동산 가격을 어떻게 억제할 것인지를 주로 고민한다. 이처럼 건물의 재건축, 또는 복원을 신중히 결정하고, 소프트웨어를 하드웨어와 함께 개발한다면 이 프로젝트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도 건물주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부동산 문제를 직접 언급한 것이 획기적이다. 도시공간에 투영된 사람들의 욕망을 감추지 않고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실제 부동산 가격을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남는다. 국가권력도 마음대로 못하는 게 부동산 가격이다. 최소한 건물주들이 공간의 가치와 사업의 공공성을 공유하고, 협약을 통해 강제하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을 것 같다. 또 하나 아쉬운 것은 현재 리노베이션이 되고 있는 건물들이 권대표의 말과는 달리 거의 새로 짓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아마도 ‘복원(restoration)’과 ‘재현(representation)’의 미묘한 차이를 정확히 구분하지 않아서 그런 듯싶다. 어떤 유물을 복원한다는 것은, 최대한 그 유물이 만들어진 당시와 비슷한 기술과 재료로 손상된 부분을 복구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지금 북성로 일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리노베이션은 복원이 아니라 재현에 더 가깝다. 하지만 뭐인들 대수일까. 그 공간에 깃들어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쫓겨나지 않고, 십년 이십 년 세월을 살다보면 또 하나의 역사와 ‘진정한 장소성’이 생기는 것이리라.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가 자란 고향, 익산에 있는 한 골목길을 생각했다. 길이 좁고 복잡해서 독립운동가가 일본순사의 검거를 피해 종종 숨어들었다던 전설의 골목길, 경찰서 턱밑에 있지만 품이 깊어서 시위를 하던 학생들을 지켜주었던 착한 골목길, 초등학교 시절 술래에 쫓겨 들어갔다가 해질녘이 돼서야 눈물콧물이 범벅인 채 간신히 나왔던, 무서운 그 골목길, 창인동성당 뒷골목이 갑자기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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