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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공동체지원센터의 활동을 담은 보도자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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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는 못 삽니다. -임경수
조회수:25
2014-07-09 15:52:17

서울에서는 못 삽니다 . 
 

태어나 30년을 넘게 서울에서 살았지만 서울만 가면 빨리 떠나고 싶어 안달이 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다가 서울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경험(?)을 두 번 했습니다.

첫 번째는 서울을 떠난지 4,5년 즈음 되었을 때였을 겁니다. 볼 일이 있어 기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해 약속장소까지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습니다. 약속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 느긋하게 개찰구를 통과하는데 ‘또르륵 또르륵’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다는 신호음이 들렸습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뛰기 시작합니다. 덩달아 저도 뜁니다. 다행스럽게도 도착한 지하철을 무사히 탈 수 있었습니다. 지하철 문이 닫히고 차가 출발하자 함께 뛰었던 사람들처럼 만족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뛰었던 것일까요. 아직 직 약속시간까지는 많은 여유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서울이 싫습니다.

 

두 번째는 이년 전 즈음 일입니다. 서울에서 볼일을 보고 다른 장소를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습니다. 빈자리에 앉아 소설책을 읽었습니다. 환승하기 위해 걸어가는 동안에 읽다만 소설책의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갈아 탄 열차에도 빈자리가 있어 계속해서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소설책의 이야기에 빠져 있다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쳤는가 싶어 지하철 방송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아뿔사 ! 저는 반대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 있었습니다. 내가 어린 나이에 치매에 걸린 게 아닐까 의심했습니다. 시골에서는 길을 갈 때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에 대해 큰 고민을 안 해도 됩니다. 내가 어디 즈음 가고 있나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됩니다. 서울처럼 복잡하지도 않고 주변 풍경도 다 똑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울이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지금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에 살고 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파란 논이 한껏 보이는 폐교를 고쳐서 만든 사무실의 창 앞에 작은 향을 피웁니다. 그리고 108배를 합니다. 108배는 일년 전부터 시작했는데 빼먹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건강에도 좋은 일이지만 절을 하는 동안 마음도 편해지고 오늘 꼭 챙겨야 하는 일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보통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회의를 하거나 주민이나 방문객에게 강의를 하고 지역사회에 필요한 사업계획을 만듭니다. 하지만 저녁에는 마을을 찾아가 교육을 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가로등도 없는 시골길을 혼자 운전하는 일이 잦지만 서울처럼 무섭지 않습니다. 제가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저처럼 시골에서 살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교육하고 일자리를 찾아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주말이나 휴일, 휴가철에도 쉬지 못합니다. 그래도 이 시골이 서울처럼 싫지 않습니다.

 

대학입시 시험점수에 맞추고 어른들의 선택에 따르다 보니 대학에서는 화학공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막연하게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에 환경대학원에 진학 했습니다. 석사논문은 대기오염과 관련한 것이지만 환경문제의 중심에 농업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박사과정에서는 유기농업을 공부했습니다.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제가 시골에서 이런 일을 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호주에서의 짧은 경험이 제 인생을 바꾸게 한 것 같습니다.

 

호주에 제가 갔던 곳은 크리스탈워터즈(Crystalwaters)라고 하는 마을입니다. 60년대 중반 약 80만평의 땅에 만들어진 70여가구가 사는 생태마을입니다. 이 마을의 주민들은 지역의 재료를 가지고 에너지를 적게 쓰는 집을 짓고 삽니다. 적절한 텃밭을 통해 대부분의 식량을 자급하고 우수를 저장하여 식수로 쓰고 물을 아끼기 위해 수세식 화장실이 없습니다. 태양광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태양열을 이용한 온수기를 쓰기 때문에 석유의 의존도가 작습니다. 30여 가지가 넘게 폐기물을 분리 배출하여 재이용하고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하기 위해 개를 키우지 않고 삼림을 가꾸고 보전합니다. 일주일에 두 번 마을회관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하고 관심사가 같은 사람끼리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고 지역화폐를 통해 큰돈을 벌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게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생태마을을 계획하고 설계하는 방법인 퍼머컬처(Permaculture)를 통해 실현하고 있었습니다.

 

호주에서 우리 농촌마을 희망적인 미래를 볼 수 있었습니다. 대학원 시절 석유자원이 바닥이 나면 어떻게 농사를 짓고 식량을 생산할 수 있을지 해답이 없었습니다. 어르신들만 남아있는 농촌에 어떻게 젊은 사람들이 다시 들어오게 할 수 있을까 해답이 없었습니다. 농업이 없는 우리 사회를, 농촌이 남아있지 않은 도시를 어떻게 지탱할 수 있을까 해답을 찾지 못했었습니다.

 

호주의 경험은 연구자로, 학자로 사는 일에 흥미를 잃게 만들었습니다. 실험실보다는 농촌현장에 더 가고 싶어졌습니다. 연구보고서를 쓰는 일보다 농민들을 더 만나고 싶어졌습니다. 호주의 생태마을처럼 우리 농촌을 빨리 바꾸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게 시골로 생활 터전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충남 홍성에서 풀무학교라는 대안학교의 선생님으로 시골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농업, 농촌과 관련된 일을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후배들이 있어 작은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회사 이름이 이장입니다. 작은 마을의 이장이 되고 싶은 회사 직원들의 소망이 담겨져 있습니다. 지난 십년 동안 강원도 춘천, 충남 서천, 경기 안성으로 이사를 하면서 100여개가 넘는 농촌마을에서 마을계획을 만들기도 하고 도시민들이 모아 생태적으로 살 수 있는 새로운 마을을 만들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동안에도 농촌인구는 계속 줄었습니다. 농가부채로 자살하는 농민들은 여전합니다. 정부의 지원정책은 잘사는 농민도 만들었지만 가난한 농민을 더 많이 만들어냈습니다. 자유무역은 가난한 농민에게는 치명적인데도 농업선진국과 계속 FTA를 체결했습니다. 농촌에 사람이 살 수 없으니 일자리도 같이 없어졌습니다. 지역의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서울의 노량진에 갑니다. 쪽방이라는 고시원에서 이천원짜리 컵밥을 먹으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답니다. 제가 이장에서 일하는 십년 동안 우리 농촌은 변한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이제 남은 삶 동안에는 한 지역의 주민으로 살아야겠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 함께 일할 수 있는 청년들을 만들어야겠다. 그래서 재작년 전북 완주에 오게 되었습니다. 지역의 어르신들의 도움으로 어른들을 위한 대안학교 ‘퍼머컬처대학’을 시작했습니다. 농촌에서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은 청년들이 팔 개월 동안 공부하는 학교입니다. 올해부터는 농촌지역에 필요한 일로 일자리를 만들고 도시민을 유치하여 인구를 늘리는 사업을 하는 완주커뮤니티비지니스센터에서도 일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협동조합입니다. 올해 연말부터 누구나 자유롭게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농업, 농촌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시장자본주의인데 시장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이 협동조합이기 때문입니다. 농촌학교의 방과후 학교를 책임지는 학부모의 협동조합도 만들고 햇빛으로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도 협동조합으로 만들고 귀농귀촌하고자 하는 분들의 집을 짓고 생태마을을 만드는 회사도 협동조합으로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FC바르셀로나 축구팀처럼 전북의 프로야구구단도 협동조합으로 만들면 더 좋겠죠.

 

도시에서 사는 것이 허망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완주로 오세요.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막걸리 한잔 하면서 해보게요.

 

 

1965년 서울 산

서울 마포에서 태어나 서대문구에서 30여년을 삶

2001년 주식회사 이장 창업, 2007년 사회적기업 인증

2010년 전북 완주로 귀촌, 2011년 퍼머컬처대학 개교,

2012년 완주커뮤니티비지니스 센터장을 하면서 퍼머컬처대학 운영중

어머니, 부인, 아들 둘, 딸 하나와 완주 고산에서 지역주민으로 살아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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