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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들레] 지역공동체를 위한 중간지원조직에서 일하며
조회수:54
2014-07-09 15:55:28

지역공동체를 위한 중간지원조직에서 일하며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 임경수

 

무서운 서울

30 년을 넘게 살았던 곳이지만 서울만 가면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 난다 .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다가 서울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경험 (?) 을 한 적이 있다 . 첫 번째는 서울을 떠난 지 4,5 년 즈음 되었을 때였다 . 약속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 느긋하게 개찰구를 통과하는데 ‘ 또르륵 또르륵 ’ 열차가 들어오고 있다는 신호음이 들렸다 .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뛰기 시작했다 . 덩달아 나도 뛰었다 . 다행스럽게도 도착한 열차를 무사히 탈 수 있었다 . 지하철 문이 닫히고 차가 출발하자 함께 뛰었던 사람들이 안도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 그런데 나는 왜 뛰었을까 . 아직 약속시간까지는 많은 여유가 있었는데 . 서울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 두 번째는 이년 전 즈음 일이다 . 지하철의 빈자리에 앉아 소설책을 읽고 있었다 . 환승해야 했지만 갈아 탄 열차에도 빈자리가 있어 계속해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 소설책의 이야기에 빠져 있다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쳤는가 싶어 지하철 방송에 귀를 기울였는데 아차 ! 반대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 있었다 . 내가 어린 나이에 치매에 걸린 게 아닐까 의심했다 . 시골에서는 길을 갈 때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된다 . 복잡하지 않은 길과 똑같지 않은 풍경에 다른 길로 빠지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 서울을 떠난 지 오래되어 어딘가에 가야 할 때 미리 생각을 해야 한다는 습관을 잊어버린 탓이었다 . 서울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

지금은 전라북도 완주군의 한 시골에 살고 있다 . 아침에 출근하면 폐교를 고쳐서 만든 사무실의 너른 논이 한껏 보이는 창 앞에 향을 피운다 . 그리고 108 배를 한다 . 건강에도 좋은 일이지만 절을 하는 동안 마음도 편해지고 오늘 꼭 챙겨야 하는 일이 생각나기도 해서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 일과시간에는 회의를 하거나 강의와 상담을 하고 지역사회에 필요한 사업계획을 만든다 . 하지만 저녁에는 마을을 찾아가 교육을 하는 일이 많다 . 그래서 가로등도 없는 시골길을 혼자 운전하는 일이 잦지만 서울처럼 무섭지 않다 . 맡고 있는 일 중의 하나는 귀농 , 귀촌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교육하고 일자리를 찾아주는 일이다 . 그래서 주말이나 휴일 , 휴가철에도 쉬지 못한다 . 그래도 이 시골이 서울처럼 싫지 않다 .

 

홍성의 안과와 서천의 자전거가게

 

서울을 벗어나 처음 살게 된 곳은 풀무학교가 있는 충남 홍성이었다 . 시골생활에 불편한 것이 있다면 병원진료였다 . 그 당시 홍성에는 안과가 없었다 . 어머님이 한 달에 한번 안과진료를 정기적으로 받아야 했는데 홍성의 인구와 지역경제 규모는 안과를 개업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 같다 . 안과가 없어지자 홍성 의료원에서 일주일에 한번 안과진료를 하고 있었다 . 홍성의료원을 찾아간 어머니와 나는 5 시간을 기다려 간신히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 그렇게 인구가 줄고 있는 농촌의 실상을 몸으로 경험하였다 . 풀무학교 일을 접고 강원도 춘천으로 이사를 했다 . 서울에서 태어난 큰 아이가 자전거를 탈 나이가 되었다 . 아이 엄마는 동네 자전거가게 보다 싸다며 춘천의 대형마트에서 자전거를 사자고 했다 . 사무실과 집으로 오가는 길에 있는 자전거 가게가 손님으로 북적되는 일을 거의 보지 못했다 . 큰 길을 넋 없이 바라보거나 비슷한 또래의 분들과 이른 저녁에 소주잔을 기울이시는 자전거 가게의 할아버지 모습이 아른거려 아이 자전거는 그 가게에서 샀다 .

이 자전거를 싣고 충남 서천으로 이사를 했다 . 큰 아이는 그 자전거를 타고 서천읍의 초등학교에 첫 등교를 했다 . 그 날 다른 지역에서 온 친구를 골려주려고 했는지 우리 아이의 자전거 타이어 코크를 누군가 빼가버렸다 . 우리 아이는 바람 빠진 자전거를 울면서 끌고 집으로 왔고 나는 아이와 함께 서천읍의 자전거 가게를 찾아갔다 . 머리가 희끗 희끗한 자전거 가게 아저씨는 자전거의 코크를 끼우고 타이어에 바람을 넣으면서 연신 혼자말로 투덜거렸다 . 돈이 되는 자전거는 못 팔고 푼돈도 되지 않는 자전거 수리만 하고 있다는 푸념이었다 . 우리 아이 자전거도 자신의 가게에서 사지 않았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 그럴 만 했다 . 서천과 인근 도시인 군산의 대형마트는 불과 20 분 거리였다 . 편하다는 이유로 대형마트에서 자전거를 샀지만 고장 났다고 해서 대형마트로 가지 않을 것은 뻔했다 . 얼마 있으면 이 자전거 가게도 없어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 이후 서천 읍내의 가게를 자세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 어떤 가게가 없어지고 어떤 가게가 생겨나는지 , 어떤 가게는 빨리 망하고 어떤 가게는 그래도 장사가 되는지가 궁금해졌다 . 대형 문방구 , 큰 옷집 , 큰 식당 , 큰 옷가게 , 큰 체육용품점 , 이런 큰 가게가 망하면 당장 다른 가게가 새로 생기지 않았다 . 몇 달이고 비어 있다가 건물주가 큰 점포를 쪼개 작은 점포를 만들면 새로운 가게가 들어온다 . 새로운 가게는 미장원 , 꽃집 , 분식집 , 토스트가게 , 부동산 , 핸드폰가게 등으로 혼자 혹은 가족이 경영할 수 있는 것들이다 . 지금도 가끔 서천에 갈 때면 이 가게는 없어졌네 , 이 가게는 새로 생겼네 하며 읍내를 걸어본다 . 그리고 자전거 가게 앞에서 내가 보고 있는 동안 자전거라도 하나 팔았으면 하는 심정으로 한참 쳐다보고 있을 때도 있다 .

 

녹차마을과 마을만들기

 

농촌지역의 마을만들기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던 나로서는 과연 농촌의 마을만들기 사업이 농촌지역에서 내가 경험한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그러던 중 녹차농사를 짓는 어떤 마을에서 일하게 되었다 . 다원을 하는 농민과 설문조사를 하다가 물어보았다 .

“ 보통 술은 어디서 드세요 ?”

“00 시 . 산업단지가 있어 좋은 술집이 많아 .”

“ 농산물은 어디서 구매 하나요 ?”

( 짧은 대답 ) “00 시 대형마트 ”

“ 혹시 00 시에 사세요 ? 몇 분이 00 시의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대답했다 . 마을을 지원하기 위한 예산으로 벌어드린 돈은 마을이나 지역에 남는 것이 아니라 인근 도시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 그렇게 농촌에서 도시로 빠져나간 돈은 다시 농촌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 많아야 300 여명 정도 사는 마을에 , 그것도 60 세가 넘는 주민들이 대다수인 마을에 정부가 보조금을 주고 작업장과 펜션을 만들고 농촌관광을 하여 소득이 조금 올라간다하여 내가 경험한 농촌지역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농촌에 인구가 줄고 있는 것이었다 . 처음에는 농민만 없어진다고 단순하게 생각하였다 . 한 지역의 인구가 10 만에서 5 만이 되면 10 만 인구를 지탱하기 위해 유지되던 다양한 직업과 사업도 없어진다 . 병원도 20 개에서 10 개로 , 철물점도 10 개에서 5 개로 , 문방구도 숫자가 줄어들거나 규모가 작아진다 . 그래서 없어진 직업과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마저 지역을 떠난다 . 그러면 지역에서 뭘 하나 사고 싶어도 제대로 된 물건을 사기 어려워진다 . 인근 도시로 나갈 수 밖에 없다 . 또한 어려운 살림의 사람들은 일자리가 없어지니 도시라도 가는 편이 나을 거라면서 또 지역을 떠난다 . 그래서 우리 농촌은 인구가 감소하고 지역이 침체하고 다시 인구가 감소하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

도시와 농촌에서 마을만들기 운동을 하던 활동가들은 2000 년대 중반 함께 모여 토론하면서 우리나라의 마을이 외형상으로는 마을이지만 마을이 해체되고 있고 그래서 마을만들기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했다 . 도시지역의 경우 아파트가 밀집되고 부동산 가격과 교육 목적 때문에 자주 이사하면서 마을의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이 약화되었고 농촌의 경우 급격한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해 마을의 활력을 잃으면서 공간적으로 정서적으로 마을의 개념이 희박해지고 있다 . 그런데 이러한 마을의 해체는 예전이 존재하던 마을 내부의 경제구조마저 해체했다 . 도시 마을에서는 번 돈을 마을에서 소비했기 때문에 이 돈은 마을의 다른 주민의 소득이 되었고 이 소득은 다시 마을주민의 소득이 되는 내부순환적인 경제구조가 있었다 . 그래서 도시의 마을은 작은 소상인들이 다양한 사업을 영위할 수 있었다 . 농촌마을은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분배하거나 필요한 것이 있다면 화폐를 교환하지 않고 서로 해주었다 . 그래서 다양한 일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한 마을에 모여 살았고 마을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은 공동체 방식으로 외부에서 구해오거나 스스로 만들었다 . 이러한 마을경제의 해체는 마을의 작은 상점조차 대기업과 경쟁하게 만들었고 농촌마을을 도시의 화폐경제로 편입시켰다 . 그래서 마을을 잃어버린 개인은 거대자본과 이길 수 없는 경쟁을 해야 하지만 경쟁 속에서 벌어들인 어렵게 벌어들인 돈으로 거대자본이 제공하는 상품을 소비할 수밖에 없는 무서운 사회 속에서 살아가게 만들고 있다 .

 

마을만들기에서 지역공동체로 ..

 

다른 방식을 상상을 해보자 . 여러 농민들이 연간 100 억원의 수익을 올렸다하자 . 그렇게 번 돈으로 자신들의 집을 고치기 위해 지역에 있는 건축업자에게 그 중 20 억원을 지불했다 . 이제 이 지역의 총생산은 120 억원이 되었다 . 20 억원을 번 건축업자가 먹고 살기 위해 그 지역의 농산물 2 억원을 구매했다 . 이제 이 지역의 총생산은 122 억원이 된다 . 외부로부터 돈을 벌어야 지역이 잘 살아지는 것은 아니다 . 지역에서 돈이 돌면 지역은 잘 살게 된다 . 또한 일자리가 생긴다 . 돈은 돌고 돌기 때문에 「 돈 」 이라고 했다고 한다 . 마을만들기 활동가들은 돈의 이러한 속성에 착안했다 . 그래서 확장된 마을만들기는 첫째 , 인구변동과 교통수단의 발달에 따라 의미가 없어진 행정적 범위인 마을이라는 공간에 얽매이지 말자 , 둘째 , 지역사회에 필요한 소비와 욕구를 기업적 방식이 아니라 공동체적 방식으로 대응해서 외부의 화폐경제에 의존하지 않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 셋째 , 그래서 지역사회에 돈을 순환할 수 있게 하여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공동체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할 수 있었다 .

그러한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 일본의 작은 농촌지역에서 산에서 방목하는 방식으로 소를 키우는 임간방목 농장이 모여 그 지역의 초등학교에 우유를 공급하기 위해 협동조합 우유공장을 설립했고 구도심 쇠퇴로 상권이 축소된 중소도시에서는 술 마실 곳이 없어지자 작은 점포를 모아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하는 기업광장이라는 포장마차촌을 만들어 도심 상권을 살리기도 했다 . 부산 송정동에서는 맞벌이 부부를 위해 할머니들이 반찬을 공급하기 위한 ‘ 막퍼주는 반찬가게 ’ 가 만들어지고 충남 서천에서는 회원제 직배 방식의 새로운 유통방식으로 지역주민에게 따뜻한 두부를 공급하는 ‘ 로컬푸드 두부 ’ 가 마을기업으로 만들어졌다 . 경기 안성에서는 지역주민의 의료서비스를 위해 전국에서 유일하게 농촌형 의료생활협동조합을 설립하여 5,000 여 가구 조합원이 운영하고 있다 .

선진국 , 특히 유럽의 경우 다양한 분야의 협동조합 육성을 통해 이탈리아 볼로냐와 스페인 몬드라곤과 같은 지역공동체 사례를 만들어내었고 공동체가 지원하는 농업 (CSA: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도시농업을 위한 공동체 텃밭 , 도농직거래를 위한 농민시장 , 지역의 산물로 요리하고 지역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지역레스토랑 , 화폐의 유통없이 다자간 물물교환을 하는 지역화폐 등 다양한 실험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 우리나라도 다양한 공동체 사업이 지역 내에서 집적되고 엮어지면서 강원도 원주 , 충남 홍성 홍동면 , 전북 남원시 산내면 등이 지역공동체로 발전하고 있다 . 정부도 일자리 창출과 관련하여 이러한 주민 자발적 경제조직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고용노동부의 사회적기업 , 안전행정부의 마을기업 ,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어촌공동체회사 , 기획재정부의 협동조합 등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 그래서 마을만들기는 최근 사회적기업 , 마을기업 , 협동조합운동과 만나면서 사회적경제와 접목하고 있다 .

 

내가 사는 동네에서 내가 필요한 것을 스스로 ..

 

내가 일하는 있는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는 농촌지역에 필요한 일을 주민 스스로 발굴하고 그 일을 공동체 사업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한다 . 청소년 교육을 지원하는 북카페 , 다문화 여성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제과점 , 장애인들의 청소 · 방역사업단 , 어르신들의 반찬가게 , 귀촌한 어르신들의 목공소 , 대안에너지를 고민하는 화덕연구소 , 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텃밭사업단 , 돈도 벌고 건강도 챙기는 어르신 농악대 등의 창업을 도왔다 . 대부분 사업은 공모사업을 통해 주민창안으로 시작된다 . 사람은 없고 사업 아이템만 있는 사업을 시작하지는 않는 것이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 하지만 대부분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우리 센터 직원들은 자신이 필요한 일을 도모하기도 한다 . 나는 우리 아이들 방과후 학교가 좋아졌으면 해서 방과후 학교 협동조합 만드는 일에 참여했고 우리 막내가 다니는 초등학교 주변에 변변한 간식거리를 파는 곳이 없어 학부모와 함께 학생 , 학부모를 위한 작은 카페를 만들어보려고 하고 있다 . 막 출산을 했거나 출산을 앞 둔 직원들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 집을 지어야 하는 친구들은 주택협동조합을 , 향후 농사를 짓고자 하는 친구는 토종종자 보급사업을 ,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는 친구는 재활용사업을 고민하고 있다 .

춘천에 살 때 우리 집사람이 직원들의 점심식사를 준비했다 . 자전거를 살 때 나한테 꾸중을 들은 집사람은 점심 식재료를 집에서 가까운 재래시장에서 구입했다 . 그 시장에서 집사람은 장보는 양이 많아서 중요한 고객이었고 상인들의 친절한 인사를 받곤 했다 . 어느 날 채소가게에서 잔돈이 없어 다음 날 받기로 했던 모양이다 . 여느 때와 같이 장을 보고 어제 안 준 잔돈 500 원을 달라는 집사람의 요구에 채소장사 아줌마는 이렇게 말했단다 .

" 그렇게는 못하지 . ( 흠짓 놀래는 우리 집사람 모습이 상상이 간다 ) 대신 1,000 원짜리 배추 2 개 더 줄게 "

이게 사는 거다 . 우리 사는 게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 보이지 않는 손 」 의 원칙에 의해서만 움직인다면 그건 사는 게 아니다 . 아니 이미 모두 망했을 것이다 .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 , 세계화에 의해 화폐 중심적 효율이라는 명분하에 괴물로 변해가고 있다 . 2 만개의 직업이 있어야 돌아가는 우리 사회이지만 단 20 여개의 돈 잘 버는 직업을 갖기 위해 우리 아이들이 새벽까지 학원의 노예가 되어 있는 사회를 어떻게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 이 괴물은 매트릭스처럼 우리 삶에 드리워져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 우리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 멀리 떨어진 대안학교에 보내는 대신 , 건강을 위해 멀리 떨어진 농민이 생산한 유기농산물을 먹는 대신 , 우리 아이가 다니고 있는 우리 동네의 학교를 바꾸고 가까운 곳의 농민을 도와줄 수 있는 로컬푸드 매장을 우리 동네에 만든다면 그것은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인 동시에 가까운 이웃을 돕는 일이고 매트릭스를 탈출하여 괴물로부터 자유를 얻는 일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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